데리다 사상의 동반-후계자는 영미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파 계열의 수용자로는 문학 비평에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응용한 폴 드 만, 블룸 등의 예일학파를 들 수 있다. 좌파에서는 인도 출신으로 <그라마톨로지>를 영역한 스피박과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 저자 마이클 라이언 등이 거론된다. 이들
나누는 변증법(辨證法)은 그의 논리학과 철학의 핵심이다.
은 ‘절대 이성’이란 개념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제대로 설명될 수는 없었으므로 ‘이성을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새롭게 철학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 영역에 대해 마르크스는 탈이상적,
그라마톨로지>, <목소리의 현상>, <글쓰기와 차이> 3부작을 잇따라 내놓으면서부터. 텍스트 뒤의 구조를 밝혀내려는 구조주의가 유행하던 당시에 "텍스트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하면서, 철학계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데리다는 플라톤 이후 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육체보다는 정신, 문자
것과의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양자의 사이는 공모 내지 반영의 관계이다. 순수한 것과의 관계가 언제나 비순수한 것에 의존하여 인식되고 남자라는 말과 개념은 여자라는 말과 개념에 의존하여 서로 보충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이분법은 글보다 말을 우위에 놓는데서 알 수 있듯이, 각
Ⅰ 들어가는 말
자크 데리다라 함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대표적인 '탈 구조주의자' 또는 '해체주의자'라 일컬음을 받고 있다. 필자는 먼저 자크 데리다와 그의 대표적 사상이라 일컬을 수 있는 '해체주의'에 대하여 논의하기에 앞서 그의 사상이 어떠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 가운데 등장하게 되었는가